잡지에서 읽은 시

유골의 말/ 전순영

검지 정숙자 2014. 6. 7. 14:48

 

    유골의 말

 

     전순영

 

 

  강원도 광덕산 벼랑 속에 묻혀있던 유골들이 쉰아홉 해 만에 말을 하

고 있다

 

  열여덟 나는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자원입대했다 낙동강 전투 서울 수

복 평양 탈환까지 나를 바쳤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 밥 짓는 연

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향집이 떠올랐다 형은 어디에 있는지… 꿈에

서도 보고 싶은 형, 그 형과 나는 3400㎞ 돌아 지금 한강 언덕 위에 나란

히 누웠다

 

  돈 있는 사람 백 있는 사람 군대 안 가고, 군 복무 중에도 빼갔다 입

대해서 병원에 들어가 있다 제대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 장

관이 됐다 나같이 못난 놈들이 나라를 지고 갔다 야간전투 때 전우 몸의

줄을 잡아당겨 답이 없으면 눈물 흘리며 총을 거뒀다

 

  허리케인처럼 밀려드는 중공군과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으로 지킨 조

국이었노라고 얽힌 뼈들이 말을 하고 있다 탄알과 탄피 밥그릇과 숟가

락 만년필 전투화 약병, 녹슨 철모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참아왔던 말

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죽어 백골이 되어도 이 땅을 지키겠노라"고 광덕산 하늘 아래

유골들의 힘찬 함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애지』2014-여름호<애지의 시인들>에서 

  *  전순영/ 1999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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