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하여
오승근
마당에 김장독 몇 개 파묻는다기에
음지를 골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
벌써 동장군이 칼을 차고 있어
삽날과 몇 번 부딪히기도 했지만
땅을 파면서 고의 아니게
남의 집 몇 채를 부숴버렸다
땅 속에 많은 집들이 있을 줄이야
깊이 팔수록 더 많이 부서지는 지렁이 집
반 토막 남은 땅강아지 집
심지어 뚜껑 열린 구론산병도
아늑한 집을 짓고 잠을 자고 있다
높고 낮은 영역에 지은 저마다의 겨울 집
문득, 내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허리 펴고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산 아래 골안개만 집을 짓고 있을 뿐
내 집문서 한 장 어디에도 없다
찾고자 찾기 위해 깊이깊이 파들어 갔다
해 기울도록 파들어 갔지만
겨우 한 평 정도가 하룻거리
손 탁탁 털고 나서
내가 묻힐 옹관묘 한 채를 보았을 뿐
*시집『세한도』에서/ 2010.10.25<도서출판 지혜>펴냄
*오승근/ 충남 공주 출생, 2009년『유심』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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