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집에 대하여/ 오승근

검지 정숙자 2010. 11. 26. 00:51

   집에 대하여


     오승근



  마당에 김장독 몇 개 파묻는다기에

  음지를 골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

  벌써 동장군이 칼을 차고 있어

  삽날과 몇 번 부딪히기도 했지만

  땅을 파면서 고의 아니게

  남의 집 몇 채를 부숴버렸다

  땅 속에 많은 집들이 있을 줄이야

  깊이 팔수록 더 많이 부서지는 지렁이 집

  반 토막 남은 땅강아지 집

  심지어 뚜껑 열린 구론산병도

  아늑한 집을 짓고 잠을 자고 있다

  높고 낮은 영역에 지은 저마다의 겨울 집


  문득, 내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허리 펴고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산 아래 골안개만 집을 짓고 있을 뿐

  내 집문서 한 장 어디에도 없다

  찾고자 찾기 위해 깊이깊이 파들어 갔다

  해 기울도록 파들어 갔지만

  겨우 한 평 정도가 하룻거리

  손 탁탁 털고 나서


  내가 묻힐 옹관묘 한 채를 보았을 뿐



  *시집『세한도』에서/ 2010.10.25<도서출판 지혜>펴냄

  *오승근/ 충남 공주 출생, 2009년『유심』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