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정오의 배웅/ 최춘희

검지 정숙자 2010. 11. 27. 00:30


   정오의 배웅


    최춘희



  무릎 꿇고

  허리 굽혀 납신납신

  절을 하는 유월의 푸른 숲길

  당신이 가고 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서 있는 내게 이제 그만 들어가라

  손짓하며 홀연히 발걸음 돌려세워

  환한 웃음 입가에 번져 간다

  풀숲 아래 뱀딸기 멍울멍울 익어가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 잠시 숨을 멈춘

  절정의 시간 그 사이

  밥과 떡과 술과 과일이 잘 차려진 상

  당신께 올렸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기억의 뾰족한 못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녹슬지 않는 상처들에게

  재갈을 물려 놓은 채

  나도 당신께 절을 올리고

  또 올리고

  아주 불경스러운 한낮이다

  아름다운 한낮이다



  *시집『시간 여행자』에서/ 2010.10.25 <도서출판 황금알>발행

  *최춘희/ 경남 마산 출생, 1990년『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