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배웅
최춘희
무릎 꿇고
허리 굽혀 납신납신
절을 하는 유월의 푸른 숲길
당신이 가고 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서 있는 내게 이제 그만 들어가라
손짓하며 홀연히 발걸음 돌려세워
환한 웃음 입가에 번져 간다
풀숲 아래 뱀딸기 멍울멍울 익어가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 잠시 숨을 멈춘
절정의 시간 그 사이
밥과 떡과 술과 과일이 잘 차려진 상
당신께 올렸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기억의 뾰족한 못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녹슬지 않는 상처들에게
재갈을 물려 놓은 채
나도 당신께 절을 올리고
또 올리고
아주 불경스러운 한낮이다
아름다운 한낮이다
*시집『시간 여행자』에서/ 2010.10.25 <도서출판 황금알>발행
*최춘희/ 경남 마산 출생, 1990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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