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대나무를 심지 않으리/ 정재분

검지 정숙자 2014. 2. 4. 01:44

 

 

    대나무를 심지 않으리

 

     정재분

 

 

  대나무는 불의 성질을  가졌다. 영어로 대나무를 Bamboo로 표기하는데, 대밭이 불탈 때 나는 폭음을 의성화한 말레이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후죽순이란 말의 어원이 된, 죽순이 자라는 모습을 "푸른 불꽃처럼 폭발하는 죽순"이라고 묘사하리만치 빠르게 자라는데, 절정기에 하루에 일 미터씩 자라는 맹렬한 성장과 굽히지 않고 곧게 뻗어가는 강직한 줄기가 불길이 순식간에 위로 치솟는 모양과 흡사하다. 파죽지세(破竹之勢)는 대를 쪼개는 '대쪽' 같은 기세로 적에게 거침없이 쳐들어가 물리치는 기세를 일컫는 것으로, "대나무 코드에 불의 요소가 강화되면 이념색이 짙은 의죽(義竹)과 혈죽(血竹)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방원에게 살해된 정몽주의 일편단심을 일컬어 의죽(義竹)이라 한다. 그가 피살된 다리가 선죽교(善竹橋)요, 민영환 의사가 자결한 곳에 돋은 대나무는 혈죽(血竹)이다. 열거된 죽음들이 사심 없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속이 빈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하얗게 죽어버리는 그 결기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무슨 뜻이 그리도 '대차서' 거침이 없으며 무슨 뜻을 이루고 미련 없이 목숨을 버리는지 대나무는 일반적인 식물계의 습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 다부진 정신을 옹골차게 표방하는 대나무가 무기로 쓰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할 것이다.  

  동아시아권에서의 대나무는 신화의 다양한 소재였다. 막대기가 용으로 화했다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인데, 그것을 일컬어 화룡(火龍)이라 하였으며, 밑뿌리가 꾸불꾸불하다고 하여 잠용(潛龍)이라고 하였다. 왕권을 상징하는 용으로 화한 대나무가 전쟁도구로의 활용도는 높았다. 궁시(弓矢)를 만들고 죽도, 방패, 대창과 죽창으로 만들어진 반면에 문구(文具)를 만드는 재료인가하면 여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의 재료로 쓰이는 등, 대나무는 대립과 모순을 아우르고 반대되는 것을 일치시키는 다재이세(多材利世)의 덕성으로 생활 깊숙이 침투되었다.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 만질만질한 겉대로 엮어 만든 죽부인은 그 옛날 더위를 나는데 더할 수 없이 요긴하였던 것으로 그 소속을 분명히 한다. 아버지가 품었던 죽부인을 결코 아들이 품지 않는다함이 그것이다. 사방팔방으로 쓰임이 다양했던 대나무를 심지 않겠다는 작자미상의 시조가 있어 그 까닭을 살펴본다.

 

     백초를 다 심어도/ 대는 아니 심을 것이/ 법대는 울고

     살대는 가고, 그리나니 붓대로다/ 구태여/ 울고 가고

     그리는 대를 심을 줄이 있으랴?

 

  옛 시인은 "구슬픈 가락을 내는 피리를 만드는 대나무여서 심어 기르기 싫다고 했고, 화살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전죽도 한번 쏘면 과녁을 향해 끝없이 날아가 돌아오지 않으니 심어 가꾸기 싫다는 것이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붓대의 재료인 대나무조차도 심지 않겠다는 것인데 대나무가 항상 임을 여의고 그리움 속에서 연연하는 마음을 그리고 쓰는 붓을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라 했다.

 

 

   * 산문집『침묵을 엿듣다』에서/ 2014.1.20  <나무아래서> 펴냄

   * 정재분/ 대구 출생, 2005년『시안』으로 (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