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을 끌어안는 행복
황현산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행사를 훌륭하게 치러낸 것이 기쁘고, 우리 축구팀이 4강에 진출한 것이 기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붉은 악마' 우리들이 거리거리를 한 마음 한 색깔로 덮으며 하늘에라도 닿을 듯이 열광할 수 있었던 것이 기쁘다. 열광을 함께 누릴 때 사람들은 대범해진다.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어버리고 인간관계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서로서로 다른 사람 안에 눌려 있던 생명력을 확인하고 그 개화를 축하해준다. 낯모르는 사람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끌어안을 수 있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종류의 순결한 열광은 열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기쁘게 한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아니, 바로 나의 생명력이 거기서 꽃피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순결한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명력을 대견하게 여길 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인들이 우리의 4강 진출을 깎아내리고 우리 팀이 유럽의 축구 강호들을 차례차례 물리칠 때마다 마치 재난이라도 일어난 듯 슬퍼하였다는 기사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중국인들의 이 부당한 비난 뒤에는 아편전쟁 이후 동양권, 특히 유교 문화권에 깊이 침윤된 근본적인 패배주의가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이 될 것인가.
루쉰은 그의 유명한 소설 『아큐정전(阿Q正戰)』에서 중국인들의 '정신승리법'에 관해 말한다. 아Q는 가족도 정확한 이름도 없는 날품팔이 농민으로 비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늘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날마다 모욕당하지만 날마다 승리한다. 누구에게 뺨이라도 한 대 맞으면 자신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맞아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돈을 한 푼 빼앗기면 불쌍한 녀석에게 적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 일찌감치 마음을 고쳐먹자는 것이 그 내용인 이 정신적승리가 은폐되고 왜곡된 패배주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패배주의는 매우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정신의 승리는 실제적인 노력을 면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 자신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적인 성공을 거둘 때, 이 태평한 아Q라고 해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때도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럴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이 패배주의 속에서 편안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지녔을 능력과 재능을 깎아내려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깎아내려야 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승리하는 순간마다 실제로는 그 자신을 모욕한다. 성서가 제 고향에서 선지자인 사람은 없다고 말할 때도, 몽테뉴 같은 사람이 누구도 제 고장에서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말할 때도, 거기에는 자신과 자기 이웃의 능력을 믿지 못한 채 편안한 패배주의의 늪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나는 우리 축구팀이 대 스페인 전에서 승리를 거둔 날, 뒤늦게 대학로로 나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서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둥글게 늘어앉아 벌려놓은 술판 옆에 그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윗도리를 벗고 춤을 추고 있었다. 여기서는 중년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무작정 깃발을 휘두르고 있었고, 저기서는 고등학생들이 즉석 노래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숨어있던 재능들을 서로 끌어내어 서로 즐기고 있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붉은 악마'가 된 것은 아니다. 이 거리의 공동체가 4.19 이후 조국의 민주화를 향한 오랜 항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도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지난 80년대의 6월 항쟁 때도 이 웅원 인파 못지않은 물결이 거리를 덮었다. 우리에게는 우리 힘으로 압제에서 나라를 구한 역사적 기억이 있으며, 이 기억 속에서 우리는 나와 이웃의 힘을 믿는다. 우리 선수들의 악착같은 투지도, 패한 경기에도 주눅들지 않는 응원단의 정신력도 서로의 힘을 긍정하는 이 믿음이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옆 사람을 끌어안는 우리에게서 거대한 문화 하나가 솟아나고 있다. 이 문화와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2002)
* 산문집『밤이 선생이다』에서, 2013.6.25 <(주)문학동네> 펴냄.
* 황현산/ 전남 목포 출생, 기욤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받음.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역임, 현재 같은 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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