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소박한 정원』오경아/ 발췌

검지 정숙자 2014. 2. 23. 16:57

 

 

    『소박한 정원』오경아/ 발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더 척박한 땅이다. 1년 내내 불어다는 강한 바람과 불규칙한 날씨 탓에 대부분은 나무조차 자랄 수 없는 황야가 많다. 이 척박한 땅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나무를 대신 해준 건 황야에 끝도 없이 퍼져 있는 키 작은 헤더(heather)라는 식물이다.

  스코틀랜드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신이 스코틀랜드의 바위투성이 땅에 어떤 식물을 심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신은 참나무에게 네가 이 땅에 자리를 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참나무는 이런 바위투성이의 땅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신은 이번엔 인동초에게 물었다.네가 이 땅에 자리를 잡아줄 수 있겠느냐. 인동초는 나무조차 없는 이 땅에서 지지대도 없이 자신은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신은 이번엔 장미에게도 물었다. 장미는 이 습기 찬 날씨와 바람은 자기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무서움에 떨었다. 참나무와 인동초, 장미에게 실망한 신은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키 작은 식물에게 물었다. 그럼 네가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그 식물은 신의 요청을 쾌히 승낙했다. 신은 기뻐하며 그 식물에게 참나무의 강인함과 인동초의 향기로움과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주었다. 그 식물의 이름이 바로 헤더다.

  헤더의 줄기는 그 어떤 식물보다 강해서 스코틀랜드에서는 헤더의 줄기로 밧줄을 만들어 지붕을 얹고 초가를 만든다. 또 헤더의 향기는 그윽하고 신선해서 포푸리를 만드는 재료가 될 뿐 아니라 화력이 좋아서 불쏘시개로도 이용된다. 헤더의 꽃은 깨알처럼 작지만(종에 따라 큰 꽃도 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향기가 진한 이 꽃은 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인들에게 헤더는 삶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헤더로 뒤덮인 산에서 이들은 썩은 헤더가 만들어낸 이탄을 캐 땔감으로 사용을 했다. 줄기와 꽃은 말려서 빵을 굽고 음식을 만들고 비누를 만들어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헤더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 헤더는 없지만 대신 우리 곁을 지켜주는 자생식물이 있다. 소나무가 있고, 참나무, 엄나무, 미선나무…. 자생식물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식물을 잃는 것이 아니라 터전을 잃고, 정신을 잃고, 삶 전체를 잃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 때로는 폭풍우도 축복이다, 부분> 192 P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나무는 귀중한 것이었고 함부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저주받을 행동으로 여겨졌다. 대지의 모든 나무와 풀, 곡식을 관장하는 여신 데메테르는 자연을 훼손하거나 보호하는 인간의 행동에 벌과 상을 정확하게 내린 엄정한 여신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데메테르 여신으로부터 가장 잔혹한 벌을 받은 사람은 에리직톤일 텐데 그는 사치에 눈이 어두워 궁전을 짓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나무를 잘라낸 왕이었다. 데메테르는 분노해 에리직톤에게배고픔의 저주를 내렸다. 에리직톤의 마지막은 참으로 비참했다. 가진 재산을 먹는 데 다 탕진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마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노예로 팔아버리는 비정한 아버지가 되었고 끝내는 배고픔에 허덕이다 자신의 팔을 뜯어먹으면서 죽어갔다.끔찍한 이야기지만 나무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받은 벌이 이렇게 잔혹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인들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도 아름드리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함부로 베어내는 것을 금하는 등 경외의 대상이었던 점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무가 갖는 의미는 식물 그 이상인 듯싶다. <나무를 도끼로 찍어낸 에리직톤의 벌> 196 P  

 

 

 

  * 꿈꾸는 정원사의 사계, 오경아 지음『소박한 정원』에서

    1판1쇄 2008.6.25, 1판4쇄 2011.10.25 <디자인하우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