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새해 불러오기
정숙자
하루하루 제자리로 돌아오고 저무는 태양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확하다. 그 태양빛을 기준으로 인류는 시계와 달력을 만들었고 시간과 세월을 셈한다. 동식물을 총망라한 대지의 아침저녁과 나이 먹는 일 또한 태양과 그늘의 각도에서 파생되는 문양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새해’는 공간보다 시간의 개념이다. 일분일초 새롭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으랴만 역사와 미래, 현실의 질서와 편의를 위해 마련된 단위로서의 ‘한 해’가 또 한 번 우리 앞에 도래했다.
지구 표면에 뻗어나간 길들이 커다란 한 그루의 나뭇가지를 연상시킨다. 나뭇가지는 하늘을 향해 솟구치지만, 땅 위의 길들은 미래를 향해 달린다. 그리고 그 길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맺혀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소중한 꽃이자 열매이며 내일이 저장된 씨앗이니 말이다. 이치가 이러한즉,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가, 그리고 스스로가 최대한 아끼고 보살펴야 할 씨앗이며 잎이요, 잎이며 기둥이고, 기둥이면서 뿌리다. 어찌 한나절 반나절인들 소홀히 흘릴까보냐.
행운, 기회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느 먼 곳에서, 어느 마음 착한 사람이나 전능자가 보내주는 것일까? 맞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난데없는 떡이 아니라 우리가 쌓은 노력의 꼭대기에 깃드는 햇빛이다. ‘새해’의 들썩거림에 속지 말자. 우리는 어제의 태양과 어제의 길 위에 어제의 얼굴인 채로 달력을 바꿔 걸었을 뿐이다. 지난해의 득실을 돌아보며 내년 이맘때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 광합성하자. 정밀한 실천만이 진정한 의미의 ‘새해’를 불러올 것이리니.
* 고용노동부『내일』‘내일의 창’ 2014-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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