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손님
정숙자
행복은 긴한 손님이다.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그러나 잠깐 머물고 간다. 결코 오래 묵지 않는다. 행복은 어느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민감하며 자신의 품위를 지킬 줄 안다. 그가 만일 장기간 체류한다면 우리는 첫 순간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점차 불만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상대가 불편을 느끼는 찰나, 아니 그 이전에 벌써 행복은 자신의 본래 거처인 머나먼 대기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는 너무 빨리 다녀간 그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며 다시 한 번 방문해 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대개 우리의 앞에 있거나 까마득한 뒤쪽에 있기 마련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대서 심히 고민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행복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지식인만이 풀 수 있는 해독불능의 암호도 아니다. 다만, 범위를 너무 크게 잡지만 않는다면 행복은 우리를 수시 방문하고 위로하며 가끔은 행운도 데리고 올 것이다. 물론 뜻밖의 불행을 만나는 경우에야 어쩌겠는가! 우리의 근면이나 바람을 무시하는 재난이 닥쳤을 때, 그때는 실컷 울어야지! 눈물로라도 피어린 가슴을 닦아내야지! 그리고 다시 일어서야지! 그 끝없는 순환을 일컬어 ‘인생’이라고 표현하면 무리일까?
일생동안 지독한 난관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남의 집 창문이 더 따뜻하고 밝아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 아래 근심 없는 지붕이란 없다고 한다. 때때로 거칠지 않은 길 또한 없는 법. 누구를 막론하고 슬픈 속마음 덮고 다독이며 웃음 지을 뿐. 우리는 언어를 체득하면서부터 ‘행복’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왔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지만 궁극의 목표가 행복이요, 그 목표를 놓치지 않고 되새기고 있다는 뜻이겠거니.
‘나는 운명적으로 불행을 타고 났어. 나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잘 되지 않을 거야. 나는 팔자가 사나워. 여태까지 살아온 걸 보면 미래도 똑 같을 거야’ 절대로 이런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운명은 자신의 뇌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이 서둘러 포기하면 결국 그 지점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 지시하고 실천하며, 그렇게 되도록 하늘에 주문장을 내 놓은 것과 다름없는 처사가 아닌가. 행복은 믿고 꿈꾸는 것이다.
태양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빛을 주고, 달은 우리에게 사유할 수 있는 그늘을 준다. 게다가 어제의 태양이 내일의 태양일 리 없으며 오늘이 어젯밤과 같지 않음은 우리가 이미 파악한 바, 살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전혀 만나본 적 없다면 어찌 그에 대한 그리움만이라도 간직할 수 있겠는가. 5분 전에 찾아온 5㎜짜리 행복도 별의별 우주의 항성과 행성들의 중력을 뚫고 날아든 기적이었을 것이다. 설령 노력과 행복이 이퀄선상에 놓이지 않을지라도 노력 자체가 주는 충만을 우리는 간과해서도 낮추보아서도 아니 되리라.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계간 『HAPPY KOREATECH 』201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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