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자본주의의 추위/ 박의상

검지 정숙자 2010. 11. 5. 01:06

 

   자본주의의 추위


     박의상



  시금치 한 단은 이만큼

         커다란 비닐 한 봉지였다

  슈퍼 사장이 웃으며 영수증을 준다

  1,000원 영수증을 받고 생각했다

  이 시금치에서

    아니다, 자본주의에선 냉정해지자

  그래, 이 돈 1,000원에서

  얼만가 이 사장이 벌었다

      또 얼만가 저 여점원이 벌었다

  생각하니 비닐봉지 만든 사람도

  비닐봉지 판 사람도

            또 얼만가 벌었다

  생각하니 이 돈 1,000원에서

     또 얼만가

  이 파릇한 시금치를 싣고

  전라도 먼 섬에서 서울까지

            털, 털, 털, 털, 달려온

  셋 넷 운송자들도 벌었다

  그 운송 배와 자동차를 만든 회사도

  타이어 공장도 기름 공장도

  그 회사와 공장 사람들도

         다들 얼마씩인가 벌었다


  이 돈, 1,000원에서 그러면

  2월 3일 어제 하루 종일 허리 굽혀

  시금치를 캔 사람은

           얼마나 벌었을까 얼마나

  생각하니 그 먼 섬 사람은

  아아 추워! 아아 추워!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시금치 빨간 뿌리같이 언 손

  몇 번 호호 불기나 했을 것이다

      그러다 저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다 냉장실을 본다

  안 팔리고 남은 시금치 봉지들이

               저기 가득 춥다



   * 시집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나, 참,』에서/ 2010.9.5 <시안>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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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의상/ 만주 출생, 1964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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