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무극(無極)/ 양문규

검지 정숙자 2010. 11. 4. 00:20

  

   무극(無極)


    양문규



  산중의 봄날엔 소리들이 무극(無極)에 닿는다


  장화 바닷가에 홀로 십 년 가까이 사는 시인

  어느 상 받는 자리에서

  자신의 시 기러기 울음만도 못하니

  이 상은 당연히 기러기에게 주어야 한다고 설한 적 있다


  나의 시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가 없기에 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는가

  뻐꾸기 쑥국새가 운다


  봄맞이꽃들 속에는 어떤 소리들이 들어 있을까

  냉이, 홀아비꽃대, 너도바람꽃, 개구리자리,

  나도양지꽃, 뫼제비꽃, 깽깽이풀,

  봄구슬봉이, 처녀치마, 꽃마리……


  이 산중의 봄날은 물결치듯 소리로 흘러간다

  그 소리는 아침을 열어젖히지 않는다

  햇살 한 줌 주워 담으려고도 애쓰지도 않는다


  시가 아닌 곳에서 울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 시집『식량주의자』에서/ 2010.9.24 <詩와에세이>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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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문규/ 충북 영동 출생,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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