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운곡藤雲谷
이명숙
이끼 묵묵한 부도탑 지나
대나무 숲을 헤치면
새벽종성 보라 빛 푸른 그늘
실개울 비스듬히
구름 위의 처마 끝 버들치 가볍게 받쳐 든 채
하루 종일 불어오는 풍경소리
너럭바위에서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간혹 계명암의 닭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월 눈부신 햇살은
눈물처럼 흘러 고여
골짜기 굽이 돌 때마다
발은 땅에 닿지 않고
늘 간당간당 절벽 끝에 서 있었다
달빛 그림자에 가슴 베이는 나날
주렁주렁 등꽃마다 불을 밝히고
초파일 밤을 지샐 때 홀로 듣는
바람의 살들
잊혀진 생각처럼
향수해香水海 어스름 닻을 내리면
삼배 마치고 일어서는
걸어다니는 절寺 한 채
수천 수만 삼매의 뿌리 더욱 질기다
-전문(p. 144-145)
* 등운곡騰雲谷: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국가 지정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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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4-봄(48)호 <미래시학 시단>에서
* 이명숙/ 1988년『불교문학』으로 등단, 시집 『허공 꽃, 혹은 엑스타시』, 불교문학 동인, 현) 뉴욕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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