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등운곡(藤雲谷)/ 이명숙

검지 정숙자 2024. 4. 21. 02:19

 

    등운곡藤雲谷

 

    이명숙

 

 

  이끼 묵묵한 부도탑 지나

  대나무 숲을 헤치면

  새벽종성 보라 빛 푸른 그늘

 

  실개울 비스듬히

  구름 위의 처마 끝 버들치 가볍게 받쳐 든 채

  하루 종일 불어오는 풍경소리

 

  너럭바위에서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간혹 계명암의 닭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월 눈부신 햇살은

  눈물처럼 흘러 고여

 

  골짜기 굽이 돌 때마다 

  발은 땅에 닿지 않고

  늘 간당간당 절벽 끝에 서 있었다

 

  달빛 그림자에 가슴 베이는 나날

  주렁주렁 등꽃마다 불을 밝히고

  초파일 밤을 지샐 때 홀로 듣는

  바람의 살들

 

  잊혀진 생각처럼

  향수해香水海 어스름 닻을 내리면

  삼배 마치고 일어서는

 

  걸어다니는 절 한 채

 

  수천 수만 삼매의 뿌리 더욱 질기다

      -전문(p. 144-145)

 

    * 등운곡騰雲谷: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국가 지정 문화재

    -------------

   * 『미래시학』 2024-봄(48)호 <미래시학 시단>에서

   * 이명숙/ 1988년『불교문학』으로 등단, 시집 『허공 꽃, 혹은 엑스타시』, 불교문학 동인, 현) 뉴욕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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