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
박옥수
해저처럼 가라앉은 연말
하얀 눈발 내리던 그날
털실뭉치처럼 동그래한 배와 긴 꼬리를 가진 텃새가
갈고리 발로 베란다 난간을 휘감고 있다
무슨 연유로 내게 왔을까
시선은 늘 창가에 박혀있다
엄마의 혼령인 듯 잿빛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눈과 마주친다
경계를 넘어선 지도 오래인데
아직도 딸이 마음에 안 놓이는지
유리창너머로 내 맘을 꿰뚫으며 안부를 물어온다
엄마는 피난지에서 나를 낳고 삼일을 굶어
네게 빈 젖을 물렸다는 무수한 옛 이야기
달달한 걸 좋아했기에
찐 고구마를 잘라 창밖에 내어 놓는다
양식을 얻으려 새의 옷을 입고 우는 아우성인지
이제 마음이 놓여선지
식솔 하나를 달고 드나든다
새가 날아간 하얀 불곡산 너머로
내 눈길이 따라 간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산봉우리마다 고봉밥이다
-전문(p.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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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4-봄(48)호 <미래시학 시단>에서
* 박옥수/ 2022년 『미래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공저 『가온누리』『시의 끈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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