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추위
박의상
시금치 한 단은 이만큼
커다란 비닐 한 봉지였다
슈퍼 사장이 웃으며 영수증을 준다
1,000원 영수증을 받고 생각했다
이 시금치에서
아니다, 자본주의에선 냉정해지자
그래, 이 돈 1,000원에서
얼만가 이 사장이 벌었다
또 얼만가 저 여점원이 벌었다
생각하니 비닐봉지 만든 사람도
비닐봉지 판 사람도
또 얼만가 벌었다
생각하니 이 돈 1,000원에서
또 얼만가
이 파릇한 시금치를 싣고
전라도 먼 섬에서 서울까지
털, 털, 털, 털, 달려온
셋 넷 운송자들도 벌었다
그 운송 배와 자동차를 만든 회사도
타이어 공장도 기름 공장도
그 회사와 공장 사람들도
다들 얼마씩인가 벌었다
이 돈, 1,000원에서 그러면
2월 3일 어제 하루 종일 허리 굽혀
시금치를 캔 사람은
얼마나 벌었을까 얼마나
생각하니 그 먼 섬 사람은
아아 추워! 아아 추워!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시금치 빨간 뿌리같이 언 손
몇 번 호호 불기나 했을 것이다
그러다 저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다 냉장실을 본다
안 팔리고 남은 시금치 봉지들이
저기 가득 춥다
* 시집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나, 참,』에서/ 2010.9.5 <시안>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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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상/ 만주 출생, 1964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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