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소서(小暑)/ 노승은

검지 정숙자 2024. 3. 19. 14:26

 

    소서小暑

 

     노승은

 

 

  여름은 크거나 작거나

  

  한 칸 방은

  무중력의 세계

  땀도 흐르지 않고

  겨울도 없어서

  무섭다

 

  나는 내가 남긴 눈물

  며칠째 뜨거운 감자를 먹고 있다

 

  죽을 것 같아,

 

  칠흑의 밤바다를

  차가운 컵을

  혀에 받아둔 첫눈을

  퇴고 없는 시들을

  불러낸다

 

  소나기가 내려야 하는데

  당신에게 건네줄 몇 개의 계절이 젖어내려도

  찢어지는 대로

  나부끼는 대로

  살아남겠다고 다정한 인사를 해야 하는데

 

  나는 약속장소에 나가는 대신

  오늘의 날씨 속으로 도망치고 있다

    -전문(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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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노승은/ 2005『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시집 『나는 꾸부정한 숫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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