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서글픈 택배/ 최해춘

검지 정숙자 2024. 3. 21. 02:12

 

    서글픈 택배

 

     최해춘

 

 

  앞산 소쩍새 소쩍소쩍 울던 날 밤

  가랑잎 같은 몸을 가누며

  할매는 빈 집으로 돌아왔다

  희미해진 정신 줄은 삭은 빨랫줄 마냥 위태하지만

  효심 많은 자식들 사그랑주머니*가 된 홀어미 모신다며

  수건돌리기 하듯 데리고 다닐 때 어미보다

  먼저 챙긴 인감도장은

  이 손 저 손 멱살 잡힌 채 끌려 다녔고

  잡초만 무성해진 논밭들은

  아웅다웅 주인 다툼에 망연자실이다

  아직도 삭은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 불지 않아도 꼬이고 얽히며 펄럭거리는 자식들

  그래도 평생 살던 집이 좋을 거라며

  텅 빈 집으로 택배처럼 돌려보내진 할매의 집에는

  밤이 깊어도 불이 켜지지 않았는데

  초저녁 울던 소쩍새

  끝끝내 목이 메어 울음을 멈추었다

     -전문(p. 27)

 

   * 사그랑주머니: 죄다 삭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속은 다 삭고 겉모양만 남은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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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최해춘/ 2006『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시집『행복의 초가』『살다가, 문득』『슬픔을 이기는 방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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