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택배
최해춘
앞산 소쩍새 소쩍소쩍 울던 날 밤
가랑잎 같은 몸을 가누며
할매는 빈 집으로 돌아왔다
희미해진 정신 줄은 삭은 빨랫줄 마냥 위태하지만
효심 많은 자식들 사그랑주머니*가 된 홀어미 모신다며
수건돌리기 하듯 데리고 다닐 때 어미보다
먼저 챙긴 인감도장은
이 손 저 손 멱살 잡힌 채 끌려 다녔고
잡초만 무성해진 논밭들은
아웅다웅 주인 다툼에 망연자실이다
아직도 삭은 빨랫줄에 매달려
바람 불지 않아도 꼬이고 얽히며 펄럭거리는 자식들
그래도 평생 살던 집이 좋을 거라며
텅 빈 집으로 택배처럼 돌려보내진 할매의 집에는
밤이 깊어도 불이 켜지지 않았는데
초저녁 울던 소쩍새
끝끝내 목이 메어 울음을 멈추었다
-전문(p. 27)
* 사그랑주머니: 죄다 삭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속은 다 삭고 겉모양만 남은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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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회 『미래 서정』(제12호) 에서/ 2023. 12. 29. <서정시학> 펴냄
* 최해춘/ 2006년『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시집『행복의 초가』『살다가, 문득』『슬픔을 이기는 방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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