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시공時空 허물어뜨리는 외 1편
장욱
툭, 툭, 툭, 은행잎이 떨어진다
천년 금화 눈부신 질감으로 축성築城된 은행나무 황금 대궐이 허물어진다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 땅 가을벌레 흠 없는 눈물이 새벽까지 쌓아 올린 통곡의 벽을 부수는 것이리라
햇빛 정결한 손이 빈 나뭇가지 사이로 지상의 무게를 흔든다 공활한 가을 하는 푸른 여백을 내려놓는다
쿵, 쿵, 쿵, 낡은 시공時空 허물어뜨리는 소리 바깥으로 빈 새 집 하나 걸렸다
출판비 걱정없는 시의 집이 무심히 흔들린다
무게도 없이 높이도 없이 값도 없이, 하늘을 던지다
-전문(p.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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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질그룻 조각이
간장 된장 고추장은커녕
묵은 소금 덩이도 담아 두지 않은 생활 밖 장독대
조상님들 제삿날 기억도 설 명절 인사치레도 다 잊혀져 가고, 아침저녁 콩나물 길러내던 물 내려가던 소리도 담아 두지 못하고, 가마솥에 안치고 시루떡을 쪄내던 아궁이 장작불 뜨거운 김을 맨손으로 잡아 두지 못하고, 오일장 십 리 자갈길 발바닥에 박히던 배고픈 시장기도 꼬르륵 내려보낸 밑 빠진 시루
멧돼지가 밀어 깨뜨린 질그릇 조각들이 빛 우물이 되어
목 떨어지고 팔다리 부러지고 이끼 낀 장독대 바닥 돌, 이땅의 미소를 끌어 안았다
늦가을 햇볕도 옆에 있었다
-전문(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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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태양의 눈 기억함을 던져라』에서/ 2024. 3. 15. <달을쏘다> 펴냄
* 장욱/ 1992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사랑살이』『사랑엔 피해자뿐 가해자는 없다』『겨울 십자가』, 시조로 쓴 한량춤『조선상사화』『두방리에는 꽃꼬리새가 산다』, 시조300수로 쓰다『민살풀이춤』『분꽃 상처 한 잎』, 디카시집『맑음』, 논저『고하 최승범 시조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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