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출렁이다
장욱
내면을 흔들어
질문하고 답하고 소리치고 내동댕이쳐, 부스러진 껍데기 파편을 버리는 중이다
비틀린 모서리 핏빛 관절을 못질하여 하나의 의자로 깊이를 파내는, 끙끙 앓는 사랑 망가진 시간 틈에 끼어들어 고뇌와 고심을 앓는 병 영靈은 쓸쓸해지고 겉은 후패朽敗하여 낡아가는 여백
깨끗한 손이 마디 없이 투명하게 얽힌 긴 끈을 끌어다 모든 삶을 엮어내는 그의 영혼 속에는 별들의 일상이 치열하게 반짝이는 푸른 갈등, 무궁한 힘으로 끌어당겼다가 놓았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깨끗이 떨궈낸다
편한 팔걸이와 등받이 높이를 버리고
하늘을 깊숙이 받아들이는 우물은 지상에 가장 큰 의자가 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의자의 편한 팔걸이와 높은 등받이는 지상에서의 권세를 상징한다. 먼 중세 유럽에서 교황이 앉던 거대한 상아象牙 의자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그런 것을 궁극적인 구원과는 무관하거나 아니면 구원을 방해하는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의자는 제 몸을 내동댕이치고 부수며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리는 중"이다. 그것은 엄청난 고뇌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렇게 할 때만 우물과 하늘 사이의 수직 연결로가 생긴다. 하늘을 깊숙이 받아들이는 지상의 "가장 큰 의자"가 되는 것, 이것이 장욱 스타일의 해체 전략이 지향하는 목표이다. (p. 시 30/ 론 131-132) <오민석/ 문학평론가 · 단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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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태양의 눈 기억함을 던져라』에서/ 2024. 3. 15. <달을쏘다> 펴냄
* 장욱/ 1992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사랑살이』『사랑엔 피해자뿐 가해자는 없다』『겨울 십자가』, 시조로 쓴 한량춤『조선상사화』『두방리에는 꽃꼬리새가 산다』, 시조300수로 쓰다『민살풀이춤』『분꽃 상처 한 잎』, 디카시집『맑음』, 논저『고하 최승범 시조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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