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람 부는 밤 외 1편/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24. 3. 8. 02:05

 

    바람 부는 밤 외 1편

 

     강인한

 

 

  스스로의 그림자를 거두어 들고

  이 바람에서 저 바람으로 건너가는 것들.

 

  시간이 시간을 풀어주듯

  훌훌 떠나갔다.

  맨발인 채, 비로소 그는 떠나갔다.

  오늘 그는 불 속으로 걸어갔다.

 

  단 한 사람의 죽음을 만나기 위하여

  진실한 빛이 내리고, 영원한 장소

  크고 목마른 하늘이 넝쿨져 강물처럼 흐르는 곳

  그곳을 향하여 홀로 걸어갔다.

 

  얼마나 망설였던 것인가.

  몇 번이고 뒤돌아본 인간의 마음

  쓸쓸히 마지막 문을 닫던 밤.

 

  겨울 유리창 앞에서 입김 불며 어둠을 내다보던

  아, 바람 부는 프로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나갔다.

     -전문(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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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초식동물에게도

  산다는 것은 본능, 

  적응하는 건 삶의 수단이다.

 

  아가야,

  옛날 코끼리들에겐 길고 아름다운

  어금니가 있었단다.

  소름 끼치는 죽음의 놀이더

  그 불쏘시개로 필요한 상아.

 

  상아가 아름다워서 죽어야 하는

  코끼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서란다

  어금니 없이 태어나는 모잠비크의 코끼리

 

  아가야,

  상아가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그 슬픈 행복을 너는 아는 거니?

  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전문(p.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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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장미열차』에서/ 2024. 3. 5. <포지션> 펴냄 

  * 강인한(본명, 동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대운동회의 만세 소리」 당선, 시집『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백록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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