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밤 외 1편
강인한
스스로의 그림자를 거두어 들고
이 바람에서 저 바람으로 건너가는 것들.
시간이 시간을 풀어주듯
훌훌 떠나갔다.
맨발인 채, 비로소 그는 떠나갔다.
오늘 그는 불 속으로 걸어갔다.
단 한 사람의 죽음을 만나기 위하여
진실한 빛이 내리고, 영원한 장소
크고 목마른 하늘이 넝쿨져 강물처럼 흐르는 곳
그곳을 향하여 홀로 걸어갔다.
얼마나 망설였던 것인가.
몇 번이고 뒤돌아본 인간의 마음
쓸쓸히 마지막 문을 닫던 밤.
겨울 유리창 앞에서 입김 불며 어둠을 내다보던
아, 바람 부는 프로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나갔다.
-전문(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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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초식동물에게도
산다는 것은 본능,
적응하는 건 삶의 수단이다.
아가야,
옛날 코끼리들에겐 길고 아름다운
어금니가 있었단다.
소름 끼치는 죽음의 놀이더
그 불쏘시개로 필요한 상아.
상아가 아름다워서 죽어야 하는
코끼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래서란다
어금니 없이 태어나는 모잠비크의 코끼리
아가야,
상아가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그 슬픈 행복을 너는 아는 거니?
상아가 사라지는 모잠비크
-전문(p.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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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장미열차』에서/ 2024. 3. 5. <포지션> 펴냄
* 강인한(본명, 동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대운동회의 만세 소리」 당선, 시집『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백록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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