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주원_심장의 역할을 사랑하는 사람(발췌)/ 오브제와 너 : 양안다

검지 정숙자 2024. 3. 14. 02:56

 

    오브제와 너

 

     양안다

 

 

  너는 밤 골목을 걷는다.

  유난히 걸음이 빠르다고 너는 생각한다. 너는 풍경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본다. 너는

  밤 골목을 걷는다. 너와 함께 밤이 걷는다.

  골목은 달리지 않는다. 너는 행인과 취객이 어울리는 것을 본다. 너는 누군가의 타액을 본다. 너는 대리석에 누운

  아이를 본다. 너는 열기에 대해 생각한다. 너의 몸을 식어가고

  너는 어둠보다 인간이 더 많은 장면을 본다. 너는 빈 병을 보고 관악기를 떠올린다. 너는 너의 입술 모양을 가늠한다. 너는

  밤 골목을 걷는다. 너는 인파 속에 있다. 너는 함정 같던 지난날을 복기한다. 너는 엎어진다. 너는 취객이 깨뜨린 맥주잔을 본다. 너는 확산과 감염을 사랑한다. 너는 흩어진다. 너는 밤 골목을 걷는다. 너는 지난날로부터 걷는다. 너는 밤 골목을 잊는다.

      -전문-

 

  심장의 역할을 사랑하는 사람(발췌)-양안다의 신작시에 나타난 2인칭 실험에 대하여_김주원/ 문학평론가

  '오브제object'는 사물이나 대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있다. 밤 골목을 걷는 '너'는 풍경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본다. 밤과 함께 걷는 '너'는 밤의 오브제를 볼 것이다. 행인과 취객, 누군가의 타액, 대리석에 누운 아이가 밤의 골목에 있다. '너'는 "어둠보다 인간이 더 많은 장면"을 본다. '너'는 인파 속에 있고 "함정 같던 지난날을 복기"한다. 엎어지면서 취객이 깨뜨린 맥주잔을 본다. 이 시에 나타난 밤 골목은 소란스럽고 취기醉氣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 '너'는 "확산과 감염을 사랑한다" 확산과 감염은 밤 골목의 인파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밤 골목을 걷고 있지만 '너'를 끌고 가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 밤 골목으로 인해 떠올린 기억과 분위기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로부터' 걷는 것이며 풍경이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밤 골목은 잊힌다. 「오브제와 너」는 밤 골목의 오브제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면서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 시에서 밤 골목은 단순한 대상이기를 그치고 확산과 감염으로 '너'를 이끄는 특별한 오브제이다. 밤 골목을 걸으며 '너'는 밤 골목마저 잊고 복기된 지난날을 걷게 되는 것이다. 예술에서 오브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에서 그것은 확산과 감염의 장치가 아닐까. '너'를 통해 오브제의 의미는 더욱 객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p. 시54-55/ 론 55-56)

   -----------------

  * 『시결』 2024-봄(창간)호 <시결이 주목한 시/ 해설>에서

  * 양안다/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작은 미래의 책』외 6권, <뿔> 창작 동인

  * 김주원/ 2021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