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역 안에서/ 정재율

검지 정숙자 2024. 3. 11. 01:08

 

    역 안에서

 

     정재율

 

 

  가만히 앉아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사람과

  역 안에 놓인 TV를 보고 있는 사람

 

  TV에서는 몽골의 유목민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유목민의 아이들은 게르에서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은 배우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견뎌지는 것일까

 

  큰 가방 하나와 함께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다가

  소리 죽여 우는 사람도 보았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 안으로 몰려들었고

  

  옆 사람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사람과 시간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목민의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계속 이동했어야 하므로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기억한다고 말한 유목민들 또한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겠지

 

  누군가 오는 소리에 금방 삼켜야 했겠지만

  15분 넘게 지연된 열차가 타는 곳 9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전광판을 확인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역 안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누군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는 유목민의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시간에 도착할지 모르는

  배낭을 멘 사람들의 뒷모습을

    -전문(p. 1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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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결』 2024-봄(창간)호 <신작 마당/ 시>에서

  * 정재율/ 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