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을 토하고 죽는 식물이거나 식물을 토하고 죽는 짐승이거나
김경주
부정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삶이여 내 혐오의 가장이여
그래, 누구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짐승 한 마리
앓다가는 거지
식물은 자기 안의 짐승을 토하다 가는 거고
인간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식물을 모두 토하고
가는 거지
(나는 그 극의 이 부분이 수정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 바깥에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말아야 할
참혹 같은 거
부정의 힘으로 식물은 짐승을 앓고 있고
짐승은 식물의 소리로 울고 있지
생이란 부정을 저지르면서
매우 사적인 방식이 되어간다
자기 부정을 수정할 때
열 손가락에서 생겨나는 얼
거짓말의 글쓰기
같은 거,
(채찍이 노예를 만든다)
그래, 우린 아주 다정하게
사적인 방식으로 멀어지고 있지
나는 이제 그 극의 억양을 수정하련다
이 일은 언어의 옆에서 낭떠러지가 될 것이다
-전문-
▶ 시결의 눈 사람_ 3. 서정의 변화와 확대(발췌)/ 이숭원/ 문학평론가
지금은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자만,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인 2007년에 발표한 김경주 시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자. 그의 작품은 상상력 통합의 시대적 표지가 된다.
(···)
여기 보인 부정의 언술은 자못 처절하고 현란하다. 화자는 매우 극한적인 어사를 사용하고 있으나 불경스럽거나 기괴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화자는 부정의 힘이 여기까지 자신을 버텨오게 한 동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기 부정을 수정할 때/ 열 손가락에서" 얼이 생겨나고 그 '얼'이 종국에는 "언어의 옆에서 낭떠러지가 될 것"이라는 극한적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자신의 종말을 걸고 도박하는 가혹한 극단주의자의 허무, 그 절대의 절규를 보는 듯하다. 기존의 규범을 부정하고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생물학적 근성에서 이탈하고 싶은 극도의 탈출 욕구가 허공으로 도약하는 시인의 육성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 발상과 사유는 세계를 조롱하는 환멸의 상황으로 번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매우 강한 서정의 울림이 솟아나고 있다. 부정의 부정까지도 결국은 서정의 영역에 융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시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그와 함께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하려는 열망이 시인을 압도하고 있음도 알아차리게 된다. 초현실주의적 자유 연상의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시어의 교묘한 배치로 의미를 분산하고 시인의 의도를 확장하는 독특한 방법을 구사했다. "채찍이 노예를 만든다" 같은 아포리즘이나 "그래, 우린 아주 다정하게/ 사적인 방식으로 멀어지고 있지" 같은 아이러니의 어법은 시인의 내면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려는 효율적 전략이다. 그는 시어와 형식의 조작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데, 저변에는 도도한 서정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서정의 통합을 지향한다. 부정을 다시 부정하는 극한의 화법은 자기 파열을 넘어서서 서정의 극점을 향해 비상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일의 압박감과 거기 도전하여 부정의 모반을 일으키고 싶은 욕망이 겹치면서 상대적 의식이 융합된 복합적 정념을 강렬한 어법으로 표현했다.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이 결합하면서 이 시는 서정과 전위와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신생의 지점을 확보했다. 그래서 이 시는 새로운 진화의 기폭제가 되었고, 문학사의 사건으로 당당히 기록되었다. 이 시인의 시를 요즘 보기 힘들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p. 시25-26/ 론 25 (···)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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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결』 2024-봄(창간)호 <시결의 눈/ 시의 서정_「서정의 행로」>에서
* 이숭원/ 1986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저서『백석 시, 백 편』『시 읽는 마음』『탐미의 윤리』『김종삼의 시를 찾아서』등, 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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