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안에서
정재율
가만히 앉아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는 사람과
역 안에 놓인 TV를 보고 있는 사람
TV에서는 몽골의 유목민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유목민의 아이들은 게르에서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은 배우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견뎌지는 것일까
큰 가방 하나와 함께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다가
소리 죽여 우는 사람도 보았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간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 안으로 몰려들었고
옆 사람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사람과 시간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좌우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목민의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계속 이동했어야 하므로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기억한다고 말한 유목민들 또한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겠지
누군가 오는 소리에 금방 삼켜야 했겠지만
15분 넘게 지연된 열차가 타는 곳 9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전광판을 확인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역 안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누군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는 유목민의 마음으로
한참을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시간에 도착할지 모르는
배낭을 멘 사람들의 뒷모습을
-전문(p. 1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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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결』 2024-봄(창간)호 <신작 마당/ 시>에서
* 정재율/ 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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