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한 안부 외 1편
조윤주
엄마는 북으로 갔다는
당신 언니에 대한 생사를 몹시 궁금해했다
아옹다옹 함께했던 시간들을 곱씹으며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탄식을 자아내는 날들이 많았다
대한적십자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놓고
엄마가 내뱉는 속 타는 한숨은
천 개의 불을 살가죽에 엎질러 놓고
고문을 견뎌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60여 년째 여전히 생사를 확인 중이던 그때
소식이 찾아왔다
"북에 계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성사된
2014년 2월 21일 이산가족 상봉 날에
당신의 언니는 한 달 전
고인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며
금강산호텔
북에서 내려온 조카들을 껴안고
통곡했다
눈물 콧물로 서로 얼굴을 비비며
겨우 받아 든
당신 언니의 사진 한 장
낯선 노인이 낯선 노인의 사진을 오래도록 보고 계셨다
60여 년의 거대한 세월을 움켜쥔
두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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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광장에서
지하철의 바깥
나무 궤짝 하나가 전부인 그의 가게는
몇십 개의 엿들이 보기 좋게 잘려져 있었고
광대 차림 그의 눈동자에
발길이 멈춰 섰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냉동된 가난
하지만 햇살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엿장수의 몸놀림이 점점 뜨거워지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목청을 다해 노래로 답하는
가위의 곡조를 들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경쾌한 박자는
애써 슬픔을 감추려는
차이콥스키의 고뇌가 숨은 듯도 했다
가난한 숨소리가 절반을 차지한 인생의 광장
나는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주머니의 돈은 달랑거렸고
사랑은 적립된 이별로 뒹굴었다
그의 널빤지 위에 영혼이 묶인 겨울
하늘과 땅은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고통의 엿가락을
살아있는 자들의 목젖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불구멍을 든 신호등이
엄동설한을 멈춰놓고
냉동된 터널을 지나야 봄이 온다고
키득거리는 계절이었다
-전문(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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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시조집 『눈물껍데기』에서/ 2024. 1. 29. <상상인> 펴냄
* 조윤주/ 1998년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나에게 시가 되어 오는 사람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중앙대문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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