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펜로즈의 계단 외 1편/ 데이지 김

검지 정숙자 2024. 3. 3. 01:36

 

    펜로즈의 계단 외 1편

 

     Daisy Kim

 

 

  이것은 풀 수 없는 수학공식

 

  오직 내려오기 위해 올라가며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순환의 방식이다

 

  위태로운 아랫길은 목적지가 될 수 없어 뒤꿈치를 돌아보지 않는 갑과

  가파른 미래를 무릎 삐걱거리도록 올라도 바닥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을의 공간 속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ㄱ과 납작한 발아래를 내려가는 ㄴ은 공식을 구하지 못하고 눈높이가 다른 서로의 방향만 맴도는 관계다

 

  뒤를 밟고 올라도 꼭대기는 없어 평면에만 머무는 계단의 관성

  고단한 호흡이 엎드린 계단을 물끄러미 착시한다

 

  위와 아래를 경계 짓는 불평등의 처세

  계단은 더 이상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는 통로가 아니다

 

  방식은 달라도 속내를 감춘 내면의 밑바탕, 부조리 없이 쳇바퀴를 굴리며 등에 짊어진 가족의 무게는 같다

     -전문(p.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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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 숲

 

 

  올리브 나무가 푸르렀을 땐 흔들리기를 멈추지 않는 나뭇잎 사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의 지저귐이 나무의 직선을 타오르고

  햇볕 줄기의 후렴구가 장래희망처럼 흘러내렸다

 

  검은 숲에서 너는 조용하게 팔이 길어지는 오늘을 아침 안개처럼 쏟아내는 중이었다

 

  깊은 여름의 속도로 푸른 가지의 관절마다 덜 여문 열매를 가득 달고 너는 내내 흐린 마음이었다

 

  길을 모르는 어둠 앞에서 부서진 어제를 보려고 숲속에 걸어 두고 온 낡은 램프의 손목을 생각했다

 

  꼬리를 잘라낸 토막말이 눈꺼풀의 방향으로 까만 눈물을 밀어내고 있는 여름이었다

 

  스무 살의 작은 잎사귀에 구름 주머니는 줄무늬를 그려 넣고 햇살의 뼈를 발라낸 숲의 흉터는 검은 맛이 나는 열매로 그늘을 채우고 있었다

     -전문(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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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올리브 숲』에서/ 2024. 2. 5. <미네르바> 펴냄 

  * Daisy Kim/ 2020년『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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