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경사
함성호
사람들이 안개비를 밀어내며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그처럼 꽃이 피었다
그 너머에 옥빛바다는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기울어진 의자에 앉아 있을 것이다
시든 꽃들은 계절의 다음을 모르고
불을 켠 집어등들이 수평선을 지우고 있다
지난날 우리 둘이 즐거웠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걱정과 근심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공중의 솔개처럼, 뛰어오르는 숭어처럼
운명의 경사로, 배꽃 같은 파도가 밀려들어오는 하류로,
어떤 가난도 철없음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수면 위로 드리운 팽나무 어지러운 가지에
사랑인지 증오인지 모르고 달려드는 물고기 떼
세상은 눈물로 된 바다를 휘저어 만들었대
인간이라는 장애와
세계라는 모순이
-전문(p. 65)
*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三國遺事』 3券 4塔像 調信
-------------------
* 『시로여는세상』 2022-봄(81)호 <시심전심詩心傳心/ 근작시> 에서
* 함성호/ 199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56억 7천만년의 고독』『성 타즈마할』『너무 아름다운 병』『타지 않는 혀』, 현재 건축실험집단 <EON> 대표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밤/ 이계열 (0) | 2024.03.03 |
---|---|
낙타의 문장/ 이학성 (0) | 2024.03.02 |
주목받지 못해서 감사하다/ 차창룡 (0) | 2024.03.01 |
밀림, 도시, 본능/ 최은묵 (0) | 2024.02.25 |
봉쇄수도원/ 김기형 (0) | 2024.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