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봉쇄수도원/ 김기형

검지 정숙자 2024. 2. 25. 00:54

 

    봉쇄수도원

 

     김기형

 

 

  불을 끄는 사람이 많아요 혼자의 얼굴을 혼자 보는 사람이 앉아요 팔과 다리에 흰 연기가 피어올라요

  밤새 불을 피웠습니다

  종을 쳤습니다

  뒷모습이 되려고

 

  닦이지 않는 오늘의 빛이 되려고요

 

  당신도 머리를 숙이고 있지 않나요 당신도 머리 없이 망토를 두르고 제 몸을 그리고 있지 않나요 당신이 공손하게 말합니다

  제가 닦은 흰 접시

  제가 만든 흰 우유

  제가 지운 흰 눈동자 흰 기억 잊힌 것은 잘 개인 수건과 같습니다 바닥을 닦는 흰 바람 같습니다 순한 눈 같습니다

  당신은 어지럽지 않나요 강보에 쌓여 울다보면 아이가 되지 않나요 우리는 가루가 되고 송곳이 되고 다리가 되고 기우뚱해지고 표정이 되고 아무 일이 없는 생각이 돼요

 

  지금 막 흰 돌, 당신이 구워낸 당신에게 도착한 둥근 준비

  그것 앞에서 당신이 말합니다

  나와 함께 가요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우리에게 이런 억굴이 있다는 것을요

     -전문(p.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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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계간 『상징학 연구소』 2024-봄(13)호 <연구소 초대시인 3/ 자선시> 에서 

  * 김기형/ 2017⟪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