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밀림, 도시, 본능/ 최은묵

검지 정숙자 2024. 2. 25. 01:26

 

    밀림, 도시, 본능

 

     최은묵

 

 

  사자는 죽을 때까지 사자, 들개는 죽을 때까지 들개, 물을 마실 때는 악어를 조심해, 합의된 구역이란 없다

 

  떡볶이 골목, 막창 골목, 순대 골목, 사자는 바람을 등진 녀석을 찾지, 하이에나는 사자 주변을 맴돌고

 

  물소 혼자 사자에게 덤비는 장면은 왜 매번 느린 재생일까요? 버림받은 당신의 봄처럼요

 

  송곳니가 뱃가죽을 찢는다 땅에 떨어진 뿔은 무엇도 지키지 못한다 차례대로 배를 채우는 빌딩들

 

  난 왜 뾰족한 이빨을 보면 흥분될까요?

 

  건기는 악어가 사냥하기 좋을 때다 출입문에 점포임대를 붙여 놓고 누떼는 물아 찾아 떠났다

 

  해 질 무렵 먹잇감을 노리는 들개 떼, 한쪽의 죽음은 다른 쪽의 미소

 

  배부른 맹수의 눈을 본 적 있나요?

  봄을 닮은, 아이는, 낳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은 골목 깊은 곳부터 마른다 큰길을 지배하는 빌딩

  그늘에 은신한 채 우기를 기다리는 골목들

 

  어린 사자들의 이빨이 제법 뾰족해졌다 머지않아 누 떼가 돌아올 것이다

       -전문(p. 22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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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계간 『상징학 연구소』 2024-봄(13)호 <연구소 초대시인 3/ 자선시> 에서 

  * 최은묵/ 2007년 『월간문학』으로 & 2015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괜찮아』『키워드』『내일은 덜컥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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