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나무 아래서 사과하다
김경미
활짝 핀 꽃 그늘 밑을 지나가다
문득 생각했지요.
내가 망쳤구나.
그의 이십대를···
이토록 젊고 눈부실 그 사람 인생의 봄을
갑작스런 이별통보로
내가 엉망을 만들었구나.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그 젊음.
그 화창한 시간을 내가 그랬구나.
문득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때의 갑작스런 마음이
변화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고 변명하면서
봄꽃 활짝 핀 그늘 밑에 잠시 멈춰서서
미안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 사과 전하려 직접 만날 생각은
영원히 없지만
그 사람 어느 날 활짝 핀 벚꽃 아래를 지나다
날 떠올리지 않고도
그냥 뭔갈 다 용서하는 기분이 되길
옛일 따윈 잊고
지금 참으로 단란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활짝 핀 청춘의 벚꽃 나무 아래를 지나며
그렇게 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해봅니다.
-전문-
▶시공간의 꽃 이미지 탐색 벚꽃(발췌) _한상훈/ 문학평론가
'벚꽃'은 여기서 청춘 시절의 그 남자를 호출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의 그 남자인, 사랑했던 연인을 세월이 지나 호출할 땐 대부분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일 텐데 이 시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그 지점에 이 시의 시적 묘미가 있다.
대부분 청춘 시절은 좌충우돌하면서 방황하다가 물거품처럼 가버리는 시간이다. 문득 시적 화자는 활짝 피어있는 벚꽃 그늘을 스쳐 지나가다가 그 남자의 이십대를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불현듯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그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영원할 거 같았는데, 그 당시의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던 것.
"내가 망쳤구나./ 그의 이십대를···" 이란 구절로 보아, 상대방은 나에 대한 사랑의 환각에 하염없이 빠져 있었던 상태. 단 한순간도 이별에 대한 마음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화자는 일방적으로 이별선언하고 돌아서 버렸다. 이 시의 정황으로 봐선 화자가 다른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도 아니다.
청춘 시절의 사랑이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예측불가의 미묘한 움직임일 터. 어쨌든 나로 말미암은 그 사건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가 받았을 상처에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진 것.
그리하여,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늦게나마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지금 그 남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지내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남자를 찾아 그 당시 나의 일방적인 이별통고에 대해 사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옛일 따윈 잊고/ 지금 참으로 단란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시적 화자는 진심으로 바라며, 이 시는 마무리된다. 이 시에서 '벚꽃'은 청춘 시절과 더불어 가슴 아팠던 이별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p. 시 407-408/ 론 40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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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3-12월(658)호 <평론> 中
* 한상훈/ 서울 출생, 1986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꽃은 말하지 않지만』『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아웃사이더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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