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순간의 집/ 김영

검지 정숙자 2024. 2. 19. 01:35

 

    순간의 집

 

    김영

 

 

  결집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바람의 그물코가 보인다

 

  휘몰아치는 허공을 상량으로 올렸으니

  이 집의 상량문上樑文

  무너지는 비법이 담겨 있겠다

 

  싱싱하거나 푸른 날것은

  치즈 나이프의 절삭력을 닮은

  모래 능선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의 메뉴는

  치밀했던 오류 한 점

  엄밀하게 재료를 가감하는 모래 주방에서는

  어떤 요리도 겹꽃으로 피지 않는다

 

  후식으로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종다리 울음소리를 넣어 휘저으면

  귓바퀴가 구름에 닿는다

  번뇌가 없는 뭉게구름은 속도도 없어

  한 점 그늘이 귓등에 오래 정박한다

 

  채근은 머리카락의 일

  바람은 모래를 베고 꽃잠에 들었고

  그늘의 옆구리를 찢고

  발아하는 아지랑이는 첫걸음을 놓친다

 

  길이라 고집했던 모든 길들이 다 지워지고

  위쪽은 오로지 구름이고

  아래쪽은 푹푹 허물어지는 내 발자국이다

      -전문(p. 앞쪽_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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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3-12월(658)호 <작품을 탄생시킨 모티브/ 배경사진=사막> 에서

  * 김영/ 1996년 시집 『눈 감아서 환한 세상』으로 작품활동 시, 시집『다시 길눈 뜨다』『나비편지』『수평에 들다』, 산문집『뜬돌로 사는 일』『쥐코밥상』『잘 가요, 어리광』 현)한국문인협회 이사, 전북시인협회장, 전북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