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한상훈_시공간의 꽃 이미지 탐색(발췌)/ 산벚꽃 나타날 때 : 황동규

검지 정숙자 2024. 2. 21. 02:16

<평론> 中

 

    산벚꽃 나타날 때

 

     황동규

 

 

  물오른 참나무 사이사이로 산벚꽃 나타날 때

  더도 말고

  전라북도 진안군 한 자락을 한나절 걷는다면

  이 지상살이 원 반쯤 푼 것으로 삼으리.

  장수 물과 무주 물이 흘러와 소리 죽이며 서로 몸을 섞는 

  죽도 근처

  아니면 조금 아래

  댐의 키가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용담 근처.

  알맞게 데워진 공기 속에 새들이 몸 떨며 날고

  길가엔 조팝꽃 하얀 정 뿜어댈 때

  그 건너 색깔 딱히 부르기 힘든 물오른 참나무들

  사이사이

  구름보다 더 하늘 구름 산벚꽃 구름!

  그 찬란한 구름장들 여기저기 걸어놓고

  그 휘장들을 들치고 한번 안으로 들어간다면.

     -전문-

 

  ▶공간의 꽃 이미지 탐색    벚꽃(발췌) _한상훈/ 문학평론가

  「진달래꽃」의 '영변에 약산'을 비롯해서 구체적 지명을 통해 향토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 시의 배경은 '전라북도 진안군'이며 그곳은 '장수 물과 무주 물'이 합쳐지는 '죽도 근처'이다. 물이 조금씩 불어나는 '용담 근처'이기도 하다. 길가엔 하얗게 꽃을 피워내고 있는 조팝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어느새 '물오른 참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본다. 그곳엔 산벚꽃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보다 더 하얗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가로수 길에 일렬로 서 있는 '벚꽃'이나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벚꽃'의 명승지에도 그 꽃의 화사함에 사람들은 매혹된다. 하물며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이곳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여기에선 벚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혹여 있다면 그들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산벚꽃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그 꽃을 품고 있는 자연 속에 주체인 사람도 여지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그곳의 '산벚꽃' 사이로 산책을 한다는 것은 "이 지상살이 원 반쯤 푼 것으로 삼으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도 만사 제쳐놓고 당장 달려가고 싶은 곳이지만, 꽃피는 시기와 잘 맞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시인의 진술처럼 '지상살이'의 소망을 이루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p. 시 390-391/ 론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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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3-12월(658)호 <평론> 中

  * 한상/ 서울 출생, 1986년『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꽃은 말하지 않지만』『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아웃사이더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