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나무는 새를 낳는다
한승희
부리를 가지고 있는 건 연둣빛밖에 없다
겨우내 실종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나무 속에서 연둣빛 부리를 드러내는,
그러나 아직은 어떤 하늘이 뛰어들지 알 수 없고
초봄 한때 모든 나무 속엔
지난가을 이후 모습을 감췄던
새들의 부리들이
연둣빛 노래를 꺼내려는 안간힘이 있다
그렇다면 새들은
지난가을 이후 모두 화석이 되었던 것일까
노래를 멈추고 나이테 속에 박힌 채
어두침침한 날들을 넘어왔단 말인가
끝내 가슴을 후벼파도 열리지 않는
나무들의 지난날
그 입구,
좀처럼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나무들의 한 쪽이 바람을 옮기려는 듯
우지끈 기우는 한때
봄의 나무 속엔 겨우내 노래를 담고 지낸
새 몇 마리 푸른 부리를 나이테 밖으로 내밀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유사성의 원리를 활용하여,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새잎을 새의 부리로 비유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새 봄에 잎을 피워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겨울에 실종한 새들의 울음소리"라는 상상이다. 부리로 새의 울음소리를 환유하고 부리로 새 몸뚱이를 환유한다. 은유가 두 사물의 유사성, 즉 부리 모양의 새잎을 "어두침침한 날들"인 겨울을 견딘 "새들의 부리들이/ 연둣빛 노래를 꺼내려는 안간힘"으로 상상한다. "봄의 나무 속엔 겨우내 노래를 담고 지낸/ 새 몇 마리 푸른 부리를 나이테 밖으로 내밀고 있다"고 한다. 새와 나무가 서로 소통하고 바꾸어 태어나는 환생관계로 상상하는 시인의 감각이 빛나는 시다. (p. 시 19/ 론 142-143)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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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아주, 가끔은 꽃의 이름으로 걸었다』에서/ 2023. 12. 15. <시산맥사> 펴냄
* 한승희/ 충남 공주 출생, 2003년 『순수문학』으로 등단, 공저『차령문학』『흙』『광주문학』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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