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새를 접으며 외 1편/ 한승희

검지 정숙자 2024. 2. 22. 01:18

 

    새를 접으며 외 1편

 

     한승희

 

 

  종이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온다

  단지, 스쳤을 뿐인데

  몸에 고였던 눈물이 흘러나와

  종이를 빨갛게 물들인다

 

  너를 보내고 밤새 종이를 접었다

 

  꽃을 접고 나비를 접고

  새를 접어 허공으로 날렸다

 

  새는 문턱을 넘어가지 못했다

 

  옥상에서 벼랑에서

  너에게 날아가는 새가 되고 싶어

  문밖을 나서기도 했다가

 

  다시 돌아와 종이를 접으며

  살짝, 스쳤을 뿐인데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온다

 

  종이에 슬픔을 베이며

  들켜버린

  너에게로 가는 붉은 마음을 접는다

    -전문(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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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

 

 

  지루한 비가 며칠째다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빗소리 흠뻑 둘러 빈대떡 하나 부친다

 

  타닥타닥 탁- 탁 빈대떡이

 

  노릇노릇 빗소리가 맞춤으로 익어간다

 

  너 없이 빗소리만 지지는 장마

 

  솥뚜껑 위에 빗소리만 지글지글 탄다

 

  쉬이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빗소리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에 또 내리는 비

 

  움푹 처마 밑이 패였다

 

  이 비 그치면

 

  며칠 몸을 포개가며 패인 그 자리에

 

  오지 않는 너를 심어야겠다

      -전문(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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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아주, 가끔은 꽃의 이름으로 걸었다』에서/ 2023. 12. 15. <시산맥사> 펴냄 

  * 한승희/ 충남 공주 출생, 2003년 『순수문학』으로 등단, 공저『차령문학』『흙』『광주문학』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