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달린다
문효치
내가 한 말이 달린다
나는 말 위에 타고 달린다
가속도가 붙는다
말은 내 생각과 다른 길로 달린다
말은 제 의지대로 달린다
나는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다
말의 뜨거운 목덜미를
힘차게 부여잡고 달린다
말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른다
무언가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하기 때문이다
내 머리도 그렇다
통증이 온몸을 뒤덮는다
그래도 또 말을 한다
말은 말이 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생존에 필수인 공기나 음식을 제외하면 말은 인간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말의 기본적인 기능은 타인과의 소통이다. 나에게서 발화한 말은 타인에게 전달되는 순간 나만의 것이 아닌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된다. 이 시에서 말은 말言과 말馬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말을 하는 순간 말은 말처럼 질주한다. 내가 "말 위에 타고 달"리지만, 말은 "내 생각과 다른" 말의 의지대로 달린다. 속도를 늦추거나 말에서 내릴 수도 없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허공을 향해 던진 창처럼 종국에는 내 가슴을 꿰뚫는다. 말이 지닌 속성, 말의 부작용이다. 내 몸에는 발화를 기다리는 말들이 늘 대기하고 있다. "그래도 또 말"을 하는 것은 혼자사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말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거멀못 역할을 한다. 벌어진 틈에 거멀봇을 쳐 관계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한다. 하여 "말은 말"이 되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 시 46/ 론 117-118)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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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헤이, 막걸리』에서/ 2023. 12. 15. <미네르바> 펴냄
* 문효치/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한국일보⟫ &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계백의 칼』『어이할까』『바위 가라사대』 등 15권, 시조집『너도바람꽃』, 선집 및 전집『백제시집』등 6권,
* 정지용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삿갓문학상, 석정시문학상,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등 수상.
*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역임, 현) 계간 『미네르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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