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숲*
문설
사려니숲에 가서 알았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냄새를 이 숲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금 이곳을 다녀간 소나기도 이 흙의 냄새를 물고 날아갔습니다
흙의 체취는 오래전 내 기억 속에 살았습니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마, 서어나무···
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정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
길은, 아는 길은 아는 곳으로 낯선 길은 낯선 곳으로 통합니다
세상의 시비是非도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
팔이 잘려나간 나무들은 송글송글 피가 묻어있습니다
이 상처를 가라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 할까요
나는 내 작은 상처에도 꼬박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흙비의 얼룩마저 나무들의 무늬가 됩니다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돌아갑니다
-전문-
* 제주도에 있는 숲
해설> 한 문장: 시에서는 시인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섬세한 후각으로 흙의 체취를 맡는다는 것은 흙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흙은 모든 것의 기원이므로 기원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고 있다. 사려니숲을 절경으로 이끌고 사려니숲의 주연인 나무에 감전되어 걷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를 보면서 흙의 체취가 가득한 사려니숲에서 사려니숲의 향유로 호사를 누리며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에서 결국 시인이 원하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소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이란 자신을 터놓고 상대도 상대를 터놓고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합일에 이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p. 시 24-25/ 론 140) <김왕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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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에서/ 2024. 1. 25. <詩人廣場> 펴냄
* 문설/ 2007년 『시와경계』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숙대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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