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뒷모습 외 1편
김미옥
낡은 책에 유난히 눈길이 간다
모서리 해지고 겉장 너덜거리지만
그만큼 사랑받았다는 흔적
아니, 자신을 끝없이 내주며
세상에 온 몫을
제 몸 마르고 닳도록 해낸
뒷모습
문득 오버랩되는 얼굴이 있다
연약한 뼈마디 어긋나도록
생명 품어 안고 삶을 가꾸느라
지문마저 지워진 사람
세상 환하게 밝혀주고
뚝뚝 떨어진 목련꽃잎
거멓게 저물어가는 모습에도
자꾸 마음이 간다
-전문(p.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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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발자국에 기대고
안면도 갯벌에서 물의 발자국을 보았다
바다로 한 발 한 발 걸어나간 썰물의 흔적
물너울 부드럽게 지나간 자리에 줄무늬 싱싱하다
갈매기 몇 종종거리며 노란 부리로 헤집어 보지만
길게 늘어선 물 그림을 지우기엔 어림도 없다
천날만날 하루도 어김없이 걸어간 발자국
감쪽같이 지워주는 밀물의 끈기라니!
모진 풍파 받아 안으며 닳고 닳은 길
달거리와 역사를 같이 하는 속 너른 바다는
바닥까지 햇볕 들여 뭇 생명을 키워낸다
바다는 마디 굵은 손을 가졌다
입술에 달라붙는 단물 아닌 짠물
생이 저물도록 굴 따고 조개 잡으며
썰물에 문 열고 밀물에 허둥지둥 쫓기듯 닫는
짭짤한 삶의 터전은 둘도 없는 목숨 줄이다
물이랑 닮은 주름 이마 깊이 새기고
오늘도 감빛 노을에 물든 채
물 나간 뻘밭에 엎드려 삶을 캐는 사람들
썰물 발자국 따라가는 개흙 같은 삶을 보라
쌓인 세월만큼 곰삭게 익는 중이다
-전문(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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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귀 걸어놓은 집』에서/ 2024. 1. 22. <시산맥사> 펴냄
* 김미옥/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에세이문학』으로 수필 부문 & 2023년 『다시올 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종이컵』 『말랑말랑한 시간』, 수필집『숨어 피는 꽃』『분홍 꽃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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