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걸어놓은 집
김미옥
어머님 떠나시고 빗장 걸렸다
하루아침에 입 닫힌 집은
몇 년째
귀 익은 발소리 기다리고 있다
아랫목 도란거리던 이야기꽃
열무김치 익어가던 냄새
헛간과 뒤꼍에 걸려있던 종자마늘
알록달록 그 많던 추억은
빈집의 흐린 역사가 되었다
햇살과 바람 무시로 드나들어도
액자 속 비붙이들 풀죽어
시나브로 표정을 잃어간다
해가 서쪽에서 뜬대도
한번 닫힌 입 쉽게 열리겠는가
일곱 식구 안식처였던 저 빈 둥지가
다시 온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먼지 꽃 뿌옇게 핀 장독대에는
고양이 발자국만 어지럽다
그 서늘하고 알싸한 그리움이 아프다
마을 꼭대기 초록 대문 집
오늘도 늙은 감나무 높이 귀 내걸고
대숲 바람소리에도 쫑긋거리며
문 활짝 열어줄 손길 기다리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고향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복합개념이라고 볼 때 시간은 본인이 태어난 날로부터 현재까지의 햇수로 계산되며 공간으로는 고향집 · 고향마을 · 고향산천이 연상되고, 인간으로는 살아 있는 그곳의 고향 사람과 그곳에 묻힌 죽은 조상, 그리고 객지에 나와 있는 고향 사람들이 제시된다. 그러나 고향은 옛적 추억 속의 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로 떠나온 사람은 이전 어릴 적의 고향을 생각할 때 '고정된 이전 모습'을 바꾸지 않았는데, 실제로 고향 땅에 가보면 거기도 적잖이 변하였기에, 고향의 꿈은 깨어져 배신당한 듯하고, 귀중한 보물을 도둑맞은 것 같고, 고향을 방문한 자기는 늙지 않았는데 고향 사람만 늙었다는 착잡한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위 시작품 속의 고향은 어떤 모습인가. 식구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어머니 혼자 지키시던 집. 이제는 어머니마저 승천하시고 폐가로 전락했지만 고향집은 아직도 "귀 익은 발소리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대도/ 한번 닫힌 입 쉽게 열리겠는가/ 일곱 식구 안식처였던 저 빈 둥지가/ 다시 온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직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서늘하고 알싸한 그리움이" 아플 뿐이다. 필자가 위 시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귀걸어놓은 집」이라는 詩題다. 귀를 걸어놓고 누군가의 발소리를 기다린다는 그리움의 정조는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마을 꼭대기 초록 대문 집/ 오늘도 늙은 감나무 높이 귀 내걸고/ 대숲 바람소리에도 쫑긋거리며/ 문 활짝 열어줄 손길 기다리고 있다"로 이어진 이미지의 전개는 이 시를 가편佳篇의 반열에 올려놓음에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었음이다. (p. 시 60-61/ 론 148-149) <이영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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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귀 걸어놓은 집』에서/ 2024. 1. 22. <시산맥사> 펴냄
* 김미옥/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에세이문학』으로 수필 부문 & 2023년 『다시올 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종이컵』 『말랑말랑한 시간』, 수필집『숨어 피는 꽃』『분홍 꽃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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