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이데아 외 1편
남길순
거울은 무수한 귀를 달고 있다
나는 거울 곁에 비스듬히 서 있고
거울은 배고픈 사람처럼 바라보다가 기다란 네모 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아침 옷을 입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거울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거울이 된다
밤의 유리창에 비치는 과묵한 정물
거울 속에는
얼마나 많은 겹이 들어가 있을까
이사 전날 전신 거울이
무수한 날의 밤을
포개 보인다
버리고 온 세간 옆에 서 있는 거울
모서리를 돌며 마지막으로 마주칠 때
거울은
오후 두 시의 강한 햇빛을 받아내며
놀란 말처럼 날뛰고 있다
-전문(p.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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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는 하늘로 날아갔다
양해열 시인을 추모하며
새는 강어귀를 좋아한다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며 현자처럼 몇 시간째 건너편을 바라보는 새도 있다 방금 도착한 물,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저 새, 젊은 새, 갸웃갸웃 이쪽을 보고 있다 기분 좋으면 누나라 부르고 기분 나쁘면 우기던 새, 소리 크고 다리 기다랗다 가벼이 훨훨 날아오른다 바다에 다 와가는 강 바닷물에 섞여들며 느린 유속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발을 떼는데 그 새, 어느새 갈대 속에 숨어 와락 소리를 지르는 새, 누님아 강은 거슬러 오르는 맛이지요, 물 위를 낮게 더 낮게 흰 새 한 마리 앞질러서 난다 새를 놓친 강줄기가 어둠 속에 희다
-전문(p.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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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에서/ 2024. 1. 26. <창비> 펴냄
* 남길순/ 전남 순천 출생,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분홍의 시작』, 합동시집『시골 시인- Q』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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