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넉넉/ 윤경재

검지 정숙자 2024. 2. 6. 02:21

 

    넉넉

 

    윤경재 

 

                                           

  넉넉,

  입안에서 '넉넉'하고 입천장소리 내보니

  혀끝이 하늘을 두드리는 것 같아

  머리에서 발끝까지 울림이 생긴다

  아무 일 없어도 왠지 푸근하다

 

  내 곁에

  당신만 보였을 때 난 참 넉넉했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이것저것 채워 넣으니 도리어 빈곤하다

  소금물을 들이켠 듯 목이 마르다

 

  넉넉

  소리만큼 참 쉬운 길이었는데

  시선을 맞추며 나란히 걸으면 됐는데

 

  짧은 가을 같은 소리, 넉넉

  말을 잊은 뒤에

  눈물처럼 그렁그렁

  핑 돌아 알아챈다    

     -전문(p.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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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윤경재/ 2007『만다라 문학』으로 & 2008년『문예사조』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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