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돌이기만 한 돌 외 1편
이정란
부리에 쪼이는 대로 무늬는 돌 깊숙이 침투한다
돌은 무늬에 관여하지도 돌보지도 않는다
돌은 온종일 돌이기만 한 돌과 그렇지 않은 돌로 나뉜다
무늬는 돌의 일부로서 때로는 돌을 대표하기도 한다
온종일 돌이기만 한 돌이 슬프면
그렇지 않은 돌도 슬프다
슬픔은 무늬에 안겨 춤춘다
돌 안으로 빗물이나 균열 같은
외부 세계가 들어올 때 변화된
무늬가 돌 깊은 속에 알을 낳을 때
그렇지 않은 돌은 온종일 돌이기만 한 돌에서 분리된다
커다란 소리의 포자를 물고 새가 날아오른다
새는 돌의 파편을 빗겨 난다
여러 세계의 파편인 나는 깨짐으로써 돌을 복제하는 원석
온종일 돌이기만 한 돌은 고요히 있는 나를
거듭 깨뜨리며 어디선가 새를 가져와 품는다
-전문(p.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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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모르는 삼각형의 공식
참새를 잡아다 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고양이
날개 없는 것이 날개 있는 것을 잡다니
고양이 배 위에 햇살을 한 줌 뿌려준다
나는 참새나 그의 먹이엔 관심 없다~옹
그래 그래
종종을 마친 참새가 마당을 차고 오르는 순간
딱 한 뼘 먼저 날아 앞을 가로막고
선을 넘어설 때의 현기증을 즐기는 거지
마당이라는 상황에는 무수한 삼각형이 잠재해 있지
참새와 고양이가 그중 하나에 말려든 것
충돌하는 두 사물의 각도는 임의적이며
변의 길이는 포도를 익히는 가을볕의 고뇌와 관련이 있다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를테면 고양이라는 한 사물이
온몸을 하나의 선에 바쳐
참새가 뜬 각의 정곡을 자를 때 만들어지는
세모꼴의 변수를 개괄하자면:
참새와 고양이에서는 이등변삼각형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등변삼각형은 같은 먹이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손에서만 발생하며
꼭지각은 실눈 뜬 사람의 머리를 수직 이등분한다
-전문(p.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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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나는 있다』에서/ 2023. 12. 27. <여우난골> 펴냄
* 이정란/ 1999년『심상』으로 등단, 시집『어둠 · 흑맥주가 있는 카페』『나무의 기억력』『눈사람 라라』『이를테면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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