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행성
박영기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그 무엇도 아닌데
그 무엇이 되어 가는 중이다
나는
이것, 저것, 그것이
느리게 되어 가고 있다
열망하는 쪽으로 풀어놓는다
그 무엇이 이동한다 무엇으로
오늘의 수피를 벗는 나무
오늘의 살비듬을 털어 내는 사람
오늘 하루치의 고양이를 가죽 밖으로 밀어내는 고양이
그 무엇이 무엇의 몸을 입었다가 입은 몸을 벗는다
또
그 무엇도 아닌 게 되어
바람의 골목에서
내려앉은 먼지 위에
내려앉아
쌓이는 먼지
다시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전문-
해설> 한문장: 무엇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지점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발생하는 만남이나 접속, 결합이나 해체와 관계된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 되기(becoming)'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달라지고 변화되는 의미를 드러내며 보이는 것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대상들 간의 변화된 유동적인 힘과 에너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박영기 시인이 "그 무엇도 아닌 것"에서 "그 무엇이 되어 가는 중"임을 의식하는 것 역시 "무엇"이 표상하는 구체적 형상이라기보다는 세계의 강제로부터 타자로 밀려난 존재의 장소 없음과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 변화의 양상을 언어적 긴장의 형태로 풀어내고자 함에 가깝다. 불온한 주체는 세계가 강제한 '무엇'의 '녹'으로 존재하며 사회화된 생산성과의 연동에서 벗어나 '기관 없는 신체(bodies with organs)'로서 "이것, 저것, 그것"이 되어 세계의 조직된 효율성을 붕괴시킨다. 이는 붉고 강렬한 생의 저항성을 끌어안은 채 비린 것에의 열망과 결합하여 "그 무엇이 무엇의 몸을 입었다가 입은 몸을 벗"어내는 수행으로 이어진다. 규정된 무엇으로부터 다른 무엇으로의 전회, 그리고 그것조차 다시 벗고 "그 무엇도 아닌" 상태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p. 시 98-99/ 론 116-117) <이병국/ 시인 · 문학평론가>
---------------------
* 시집 『흰 것』에서/ 2023. 11. 10. <파란> 펴냄
* 박영기/ 경남 하동 출생 2007년『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 외 2편/ 허윤정 (0) | 2024.01.15 |
---|---|
회랑 외 1편/ 박영기 (0) | 2024.01.14 |
겨울 강 외 1편/ 송병숙 (0) | 2024.01.13 |
및/ 송병숙 (0) | 2024.01.13 |
암흑 물질 외 1편/ 김신용 (0) | 2024.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