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외 2편
허윤정
벽을 여는 허공
-전문(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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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묶이지 않는다
-전문(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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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만선이다
-전문(p. 64)
해설> 한 문장: 「안개」는 벽을 가리는 장애물이다. 안개 속에선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럽다. 그 자체가 벽인 안개는 스스로 자취를 감추면서 벽을 연다. 그런 안개는 스스로 벽이면서 벽을 여는 허공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제목과 단 한 줄의 각주 같은 시문으로 존재와 세계의 상관성, 무와 유의 동일성과 호환성을 보여준다.
삶은 안개와 같다. 벽이면서 벽이 아닌, 자취를 감추면서 벽을 여는 보이지 않는 환영들, 「안개」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앞에 존재하는 신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신비로운 안개의 선물이다. (p. XV-XVⅠ)
「여백」 인간이 남겨 놓은 공간의 자연, 여백, 당연히 인간의 권능 밖이다. 역으로 인간이 여백에 묶일 일이다. 사유를 열어놓은 공간, 시의 행간이 그렇고 그림의 여백이 그러하다. 문자도 붓질도 닿아서는 안 된다. 자연이자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백은 묶을 수도, 묶어서도 안 된다. 훗설의 괄호는 여백을 열어두도록 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무지의 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도 시인은 묶이지 않는 여백을 바라보고 있다. 순수 서정이 형이상의 지혜와 만나는 시편이다. p. XVⅢ )
「적막」천지간에 소리 없음,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거나 정지한 시간, 외로울 수 있겠지만 가고 싶은 세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이룬 '적막'은 "만선이다". 비우고 버리고 떠난 세계, 홀로 남은 피안의 적막 "만선", 한 줄의 금언 같은 시편이다. (p. XVⅡ ) <변의수卞義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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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일백 편의 한줄시』에서/ 2023. 12. 20. <상징학연구소> 펴냄
* 허윤정/ 경남 산청 출생, 1977-1980년『현대문학』 이원섭 추천, 시집『빛이 고이는 잔盞』『별의 나라』『크낙새의 비밀』『자잘한 풀꽃 그 문전에』『無常의 江』『꽃의 어록語錄』, 동시집『꼬꼬댁 꼬꼬』, 시조집『겹매화 피어있는 집』, 시선집 금속 활자공판『거울과 향기』, 영어 번역 시집『Some Where in the Sky』등, 한국대표 서정시 100인선『풀잎 그 이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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