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겨울 강 외 1편/ 송병숙

검지 정숙자 2024. 1. 13. 01:21

 

    겨울 강 외 1편

 

     송병숙

 

 

  강이 운다

  소나무껍질같이 더께 진 울음을

  목젖까지 끌어 올리며 운다

 

  천둥 치듯 휘몰아치는 저 거친 신음소리

 

  캄캄하게 주저앉은 산도

  서릿발 선 제 슬픔을 들여다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건너지른 빗장에도

  녹지 않는 얼음동굴이 있어

  어떤 조각은 깎일수록 날카로운 흠집을 내고

  어떤 조각은 공중제비를 돌다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한번 얼어붙은 사이는 쉬 풀리지 않아

  석 달 열흘 제 몸을 얼리고 조이며

  해묵은 찌꺼기를 쩡쩡 걸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녹을 때까지

  강판 같은 어둠을 들썩이는 것이다

      -전문(p. 68)

 

     --------

     

 

 

  구멍도 겹치면 길이 된다

 

  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주저앉은 연은 한낱 종이짝에 불과했다

 

  길을 꿈꾸는 날개들의 뒤척임

 

  사립문처럼 드나들던 구멍에 바람이 인다

  겹겹이 쌓아 올리면 탑이 되고

  빼곡히 눕히면 터널이 되는

 

  축제를 알리는 북이 울리자

  동굴 안이 술렁거린다

  숨을 키운 바람이 어깨를 들썩거린다

 

  바닥을 치자

  목구멍 깊은 곳을 긁고 터져 나오는 오방색의 날개들

 

  허릿살 중살 장살

  몸을 일으킨 뼈들이

  꼬리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달려나간다

 

  어둠을 박차고 솟구치는 새

 

  휘몰아치는 장단이 뒤척이는 새들을 두드려 깨운다

 

  푸드득 푸드득

  허공에 긴 터널을 뚫는다

     -전문(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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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모 씨와 모 씨에게』에서/ 2023. 12. 16. <상상인> 펴냄

  * 송병숙/ 1982년『현대문학』추천, 시집『문턱』『'를'이 비처럼 내려』『뿔이 나를 뒤적일 때』, 시산문집『胎, 춘천 그 너머』, 춘천 봄내중학교 교가 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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