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오늘 우리는/ 박마리

검지 정숙자 2023. 12. 22. 02:34

 

    오늘 우리는

 

     박마리

 

 

  오늘도 우리는 섞인다 섞인다는 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으로 밥 먹은 지 오래되었어도 어제 밥 먹은 것처럼 다정이 필요하다 그게 서로 알아 가는 것으로 나 자세고 너 자세라는 걸 우리는 안다

 

  늘 같이해도 때론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같지 않다는 건 다른 것으로 너는 나를 이해 못 하는 거고 나는 너를 이해 못 하는 것이다 그건 네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고 나는 네가 되는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안을 보지 못한 너를 이해하기로 한다 너를 이해하는 건 너의 일이 내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거고 네 안을 못 보는 나를 이해하는 건 너 또한 네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괜찮아, 그게 뭐라고. 이런 너도 이미 나를 안다는 거고 괜찮아, 이해해 이런 나도 이미 너를 안다는 것이다 안다는 건 다가가 스며든 것으로 내 일을 만드는 것이고 너 또한 다가와 스며드는 건 네 일을 만드는 것이다

 

  때론 네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 섞이지 않는 건 가까워진 걸 멀어지지 않으려는 거고 멀어진 걸 가까워지기 위한 쉼표로 함께해야 한다는 오늘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전문(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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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박마리/ 1998년『라뿔륨』으로 등단, 시집『그네 타는 길들이 아름답다』, 소설집『통증』, 장편소설『홍의』『하이힐을 신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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