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적(的)'에 관하여/ 권영해

검지 정숙자 2023. 12. 20. 01:44

 

    '적'에 관하여

          '    적'이라는 형태소가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권영해

 

 

  언젠가 출판 뒤풀이에서

  K 소설가가 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엿들은 적이 있다

 

  "시인은 '인간적'이라는 말보다 인간성은 개차반이라도 시를 잘 쓴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시인적'이어서 더 큰 칭찬일 수 있다"

 

  그래

  곰곰 생각해 보니

  의욕보다 의욕적이 더 의욕이 있는 듯하고

  고의보다 고의적이 더 고의 같다

  극보다 극적이,

  드라마보다 드라마틱(dramatic)

  비교적 더 실감난다

 

  계산엔 젬병인 내가

  계산적이기도 한 걸 생각하면

  사이비似而非 같은 '   적'은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용서받을 것 같은

  편리적, 두루뭉술적 접미사

 

  여기가 바로

  '합목적적合目的的'이든

  불멍,

  물멍,

  숲멍······ 처럼 맹목적이든  

  '   적'의 가치가 '적중的中'하는 지점

 

  전쟁터 같은 인간사에는 전략적 모호성이

  편리할 때가 있다

      -전문(p.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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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시포럼 제20집 쪼개진 빨강』에서/ 2023. 11. 20. <파란> 펴냄

  * 권영해/ 1997년『현대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유월에 대파꽃을 따다』『봄은 경력 사원』『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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