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천의무봉/ 강정이

검지 정숙자 2010. 11. 2. 19:23

 

   천의무봉


    강정이



   수도원 마당에 우그르르 지렁이 나와 있다

   평생 흙처럼 산 것이 길 잘못 들어 시멘트바닥으로 나왔으니 저것들은 필시 밟혀 죽거나 말라 죽을 터 나는 엄마 틀니를 밀어내고 지하도 걸인 찌그러진 냄비를 외면하듯 저 놈들 피하느라 몸이 갈之잔데


   수녀님은 하얀 손수건으로 지렁이를 감싸더니 한 땀 한 땀 화단으로 옮겨주는 거였다 흙을 수놓는 거였다

   구부린 수도복이 풀잎처럼 가벼웠다 와글와글 저 놈들 흙무늬로 다 깁고 보니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시집 『꽃똥』에서/ 2010.9.20 <도서출판 지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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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이/ 경남 삼천포 출생, 2004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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