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과녁/ 백소연

검지 정숙자 2010. 10. 28. 01:05

 

     과녁


      백소연



   칼바람 빙판 위로 날아와 꽂힌다

   내 무릎 위에 꽂힌 화살촉마다 쩌억 쩍 실금을 친다

   살 오른 물방울 천지에 맺힐 때마다

   둥근 물기둥이 나무 중심에 우뚝 선다

   헐벗은 가지 겹겹 살 부비며 푸욱 고개 떨칠 때

   비탈진 나무는 기꺼이 흙의 중심에 뿌리를 내어준 것일까

   텃새 한 마리 푸두둥 날아와 부리를 털자

   이내 한 점 길로 눕는 핏빛 냉기 후둑 후두둑

   우주 복판 위로 백발백중이다

   딱딱한 부리의 새들이 나무등살을 힘껏 쪼아대는 까닭은

   명중시켜야 할 제 지상목표가 숨어 있다는 반증이다

   위로 솟았다 내려앉아야 할 과녁을 기꺼이

   주시했다는 눈물겨운 노래다

   풀빵장사 어미를 등지고 선술집 늙은 아낙네 토방에 꽂힌

   기행오라비의 싸매지 못한 상처

   비문이 되어 남원 의료원 영안실 정문에 박힌다

   굵고도 짧은 버팀목으로 산다는 게 절절한 목숨이어서

   단 한 발의 살빛도 외벽으로 물러설 수 없던

   찔레밭 길

   하나를 버리면 하나를 얻는 관용과 지혜를

   나무들은 간파했던 것일까

   웅숭깊은 냉골 속 소나무옹이에 내 두 귀를 내어준다

   반쯤 어깨 기울어져 찢긴 몇몇 가지와 사유,

   푸르고 동그란 문양 울컥 그 근원에 잇닿는다

   미친 바람조차 수목을 표적 삼았을까

   꽃 진 자리 위에 손을 얹으면 피잉 피가 도는

   문장, 명중시켜야 할 화살촉은

   항시 시간의 중심 위에 섰다


  

   *시집『바다를 낚는 여자』에서/ 2010.9.20<도서출판 지혜>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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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소연/ 전북 임실 출생, 2002년『현대시문학』에 발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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