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마스크를 쓴 천사/ 정혜영

검지 정숙자 2023. 7. 8. 02:38

 

    마스크를 쓴 천사

 

    정혜영

 

 

  천사들은 날개가 세 쌍이라고 한다 한 쌍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쌍은 다리를 가리고 한 쌍은 우리가 아는 용도로 사용한다

 

  성당 안엔 사람들이 가득하고

 

  여기가 어디지?

 

  병원 유리창 너머로 봤던 아이가 앉아 있다

 

  하얀 쉬폰 드레스에 하얀 화관을 쓰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날개만 달면 될 것 같다

 

  뒷모습만 보이는 저 여자아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제 엄마보다 먼저 내가 얼굴을 마주한 아기, 저 아이가

 

  낯설다, 그때나 지금이나

 

  감히 이름 부르지 않는다 쳐다보지 못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린다

 

  '신비로운 몸과 피'*가 끊어졌다 이어진다 사람들이 일어섰다 앉는다 마스크와 미사포로 얼굴을 가린 행렬들이 제대 앞으로 나아간다

 

  한 손 위에 다른 손을 펼쳐서

  지금 여기 다른 시공간이 펼쳐지고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존재들이 같이 부르는 노래

 

  쉬폰 드레스의 여자아이들과 하얀 양복을 입은 소년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선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 눈만 보인다, 밧줄기 속에서 천사인지 사람인지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귓속 가득 밀려왔다 

    -전문(p. 24-25) 

 

   * 가톨릭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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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회『미래 서정』(제11호)/ 2022. 12. 31. <서정시학> 펴냄

  * 정혜영/ 2006년『서정시학』 신인상 수상, 시집『이혼을 결심하는 저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