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 좌담> 中
돌담 쌓기
박찬선
쌓은 높이만큼 무너지고 있었다.
브레진스키가 만리장성을 보았다는 날
나는 저마다 멋대로 생긴 돌로 돌담을 쌓았다.
판에 박은 벽돌처럼 일정한 것이면
쉽게 쌓을 수도 있는 일인데
좀처럼 그렇게 되어지질 않았다.
모가 나고 벙거지고 납작 넙적하고 동실한가 하면
크고 작은 것이어서 어렵기만 했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이것들이
아래위와 좌우로 용케 맞아떨어져서
제 모습을 지니면서도 맞아떨어져서
한 계단 한 계단 높아지고 있음은
담이 높이 오를수록 나는 발돋움을 해야 하고
목을 빼면서 하늘을 보아야 하고
이만큼 물러서서 산을 보아야 했다.
논두렁에 핀 허연 망초꽃도 보이지 않고
청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는 자꾸만 이런 것들과 결별을 하고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나를 가두고 있었다.
공화국의 백성이 되고 있었다.
-전문 (p. 24-25)
Q/ 이정현: 선생님의 시 중에 생각하는 대표시는 어떤 것일까요?
A/ 박찬선: 사실 '발표된 시는 다 대표시다'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첫 시집에 『돌담 쌓기』 표제시가 먼저 떠오르네요. 그 시는 남다른 사연이 있는데 제가 사는 집 뒷담이 돌담이에요. 제 7대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을 하나하나 날라다 담을 쌓은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그 돌담에 대한 남다른 정감이 알게 모르게 쌓이게 되었어요. 돌담을 통해서 돌담의 안과 밖을 보지요. 지금 우리는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가 양분되어 있어요. 하지만 결국 안과 밖의 소통이 되어야 정상적인 하나의 공간으로 형성이 되지 않겠어요? 그것이 '사유의 묘妙'이자 연암이 이른 '사이의 묘'라 말할 수 있어요. 대상과 나, 주체와 객체 그것이 양분되어 있을 때는 아니지만, 그것이 하나가 될 때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가 이루어지겠죠. 정반합의 발전적인 '시의 세계'가 말이죠. (p.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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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學 史學 哲學』 2022-가을(70)호 <권두 좌담: 낙강에 달 띄우고/ 낙동강문학관장 박찬선 시인을 만나다>에서
* 이정현/ 강원 횡성 출생, 2007년『수필춘추』로 수필 부문 & 2016년『계간 문예』로 시 부문 등단, 시집『살아가는 즐거움』『춤명상』『풀다』가 있고, 시전집『라캉의 여자』, 산문집『내 안에 숨겨진 나』가 있다.
* 박찬선/ 1940년 경북 상주 출생, 1976년『현대시학』에 전봉건 추천으로 등단, 시집『돌담 쌓기』『상주』『도남 가는 길』『우리도 사람입니다』, 평론집『환상의 현실적 탐구』, 시극『때가 되면 다 된다』, 설화집『상주 이야기 1』『상주 이야기 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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