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기차 타고 오는 밤/ 이기철

검지 정숙자 2022. 8. 29. 01:16

<권두시>

 

    기차 타고 오는 밤

 

    이기철

 

 

  서울에 아는 사람 두셋 있다

  악수하고 밥 먹은 사람 네댓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 서울에 대여섯 있다

  술 마시다 기차 놓치고 잠 잔 일박 여관 서울에 있다

  시집 내려고 가서 못 내고

  밤기차 타고 오며 등받이에 기대 시 쓴 밤 있다

  서울에는 내 아들 손자

  아파트는 못 사고 전세에 산다

  서울에 안 자고 기차 타고 내려오는 밤은 검다

  어제는 겨울이었는데 역에 내리니 봄이다

  살구꽃 향내가 마중 나온다

  오늘 밤은 딸기무늬 잠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전문-

 

  ◈ 사는 곳에 따라 성향이 다르고 가족관계와 경제적인 영향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게 사람이다.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은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아 넓게 퍼져가는 성향이 짙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곳에 모여 아귀다툼을 벌이며 살았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은 자연스럽게 문명을 나누는 힘이 작용하여 삶의 터전이 국건해지고 발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이유로 도시에 살기를 바란다. 이기철 시인은 청도에 산다. 그곳에서 나음의 문학을 가꾸고 <여향예원>을 설립, 지방의 문학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 가서 할 일이 많다. 출판사와 문학단체 또는 자식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확인하러 올라간다. 가장 중요한 일은 친구를 만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과 지방으로 나뉘어 문명의 발전 속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고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것을 탓한다. 항변으로 잊어버린 계절의 속도를 되살리며 화려한 딸기무늬 잠옷을 입는 호사를 부린다. (이오장 시인)

       [시의 향기를 찾아서] 경인일보/ 발행일 2022.4.26.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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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권두시/ 시로 읽는 우리의 얼굴> 에서

  * 이기철/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청산행』『흰 꽃 만지는 시간』등